무제 문서

29

2012-Mar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의 순백의 공간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3-29, 15:59:29 조회 수: 11292

거친 단면과 저렴한 소재, 흰 에폭시를 깐 바닥. 매트한 질감, 광택이 있는 소재와의 조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모든 인테리어적인 실험이 이뤄진 순백의 공간은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부암동 사무실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차들의 통행이 많은 대로변을 지켰던 카페 1974 Way Home, 샌드위치 맛이 일품인 캐주얼 비스트로 42m², 세로수길 리빙숍 에이모노와 용인 보정동의 아담한 리빙숍 호시노앤쿠키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가 디자인한 상공간은 온화하고 편안하다. 들어가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그 장소에서 오랜 시간 머물고 싶게 만든다.
그런 김재화 실장이 부암동에 그녀의 두 번째 사무실을 꾸렸다.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쇼룸이 있는 골목 초입의 4층 건물 중 4층을 사용하는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사무실은 엘리베이터 없이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은 박공지붕이 있는 쉽게 보기 힘든 구조, 게다가 부암동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도로, 산 중턱의 절까지 바라다보이는 감성적인 뷰까지 가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바꾸면서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는 있으나 결국 사는 사람이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녀의 색깔이라고 단언하기는 조심스러웠던 앞서 언급한 상공간과 달리 이번에는 날이 선 디자이너의 감각을 그대로 담았다.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가 없는 작업은 굉장히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해보지 못했던 실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칩보드를 여러 각도로 사용해봤어요. 칩보드는 싱크대 안쪽에 사용하는 값싼 자재인데, 이 소재를 주거 공간 전면에 끌어내어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회의용 테이블과 개인 책상과 책장은 물론 가로로 길고 얇은 조명등을 감쌀 수 있도록 칩보드 하우징도 만들었죠. 재료의 물성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칩보드의 단면이 드러나도록 가구와 조명을 디자인했습니다. 커튼과 방석의 원단은 아웃도어용 제품의 내피에 많이 쓰는 나일론 소재를 시도했고요.”
실험과 도전으로 완성했지만 이 공간이 무모하다거나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아마도 순백의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이트는 충돌하는 디자인 요소를 가장 잘 포용할 수 있는 컬러이며, 인테리어에서 중요한 여백의 공간과 비움의 미학을 충실히 살리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컬러다. 김재화 실장의 지난 프로젝트만 살펴봐도 그녀의 화이트 예찬론을 확인할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김재화 실장은 모던하고 비움이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사는 사람이 채워서 나갈 수 있도록 디자인에 과욕을 부리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방식이다. 간혹 김재화 실장이 만나는 클라이언트 중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과도한 디자인, 꽉 채워진 디자인,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공간. 김재화 실장은 그런 요소를 피하고자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일이 잦다.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 결국에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시키고 살면서 그 사람의 취향이 배인 애장품으로 꾸몄을 때 진정한 클라이언트의 공간이 된다는 것, 그래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그래서 김재화 실장은 구조적으로 많은 부분을 손대는 것보다는 작은 가벽을 세우거나 섬세한 동선 계획을 통해 공간을 쓰임새 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다. 인테리어를 위한 데커레이션 요소들이 충돌하는 것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그녀의 디자인은 이성적이지만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로 지은 사무실 이름을 보면 그녀는 또 감성적인 사람이다. 음악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시절에 김재화 실장을 사로잡았던 스매싱 펌킨스의 앨범의 멜랑콜리에서 시작되었고 1호선 열차에 몸을 싣고 장맛비를 창밖으로 보며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보러 가던 그녀의 여정이 함축된 단어, 언제나 공간과 관련된 일을 꿈꿨던 열망이 긴 이름 안에 담겨 있다. 때늦은 폭설로 눈에 갇힌 부암동에서는 온 세상이 숨 죽인 듯 조용한 가운데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하늘은 파란 물감을 탄 듯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하게 빛났다. 촬영 중에 운 좋게도 마주한 창밖 풍경이었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감수성과 도전적인 실험정신, 적절한 선에서 절제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 이 공간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 그 자체나 다름없다.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070-8260-1209, www.spacelita.com)


1 원래 있던 중문을 철거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공간을 분리했다. 슬라이딩 뒤편 공간은 건축 잡지와 아트북을 수납한 책장과 테이블을 놓아 라이브러리처럼 구성했다.
2 낮은 박공지붕 아래에 있어 아늑하게 느껴지는 사무실 직원들의 자리. 칩보드의 단면이 드러나도록 사무실 가구를 짰다.


1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김재화 실장.
2 일하는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 반투명 화이트 커튼은 나일론 소재이다.
3,5 프로젝트 개요와 간단한 컨셉 스케치를 그린 스케치북과 메모들.
4 거친 느낌을 주는 칩보드 단면.
6 김재화 실장이 가끔 끼는 나무 소재 안경과 철제 서랍 속 모습.
7 슬라이딩 도어가 어느 방향으로 열리느냐에 따라 공간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에디터 정수윤
포토그래퍼 신현국



출처 - 메종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 Beyond the Century 전예진주임 2012-04-17 12055
82 Colorful Atmosphere 전예진주임 2012-04-17 11134
81 미니멀리즘의 다양한 시선- 서울럭스치과 전예진주임 2012-04-06 17106
80 흙과 물, 불과 공기로 빚어진 매력적인 자재 내외장 타일 트렌드 전예진주임 2012-04-06 13593
79 온몸으로 느끼는 디자인 감각 Brand Space Identity 전예진주임 2012-04-06 15455
78 Flexible Space & Furniture 공간활용을 위한 리빙디자인의 진화 전예진주임 2012-04-06 12487
77 페르난도 & 움베르토 캄파냐 전예진주임 2012-03-29 16010
»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의 순백의 공간 전예진주임 2012-03-29 11292
75 Daring house 전예진주임 2012-03-29 11021
74 For Your Bathroom 전예진주임 2012-03-29 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