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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May

인테리어 에디터의 가구 고민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5-04, 09:37:30 조회 수: 10430

 

이 칼럼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기사다. 한정된 예산으로 가구를 구입해야 한다면 당신은 소파와 테이블, 조명 중에 무엇에 힘을 줄 것인가. 일반적인 결론에 따라 소파인가? 아니면 테이블? 아예 조명? 아, 무엇 하나 양보할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로다.



기자 생활 내내 가구숍에 촬영을 가거나 화보에 들어간 가구를 보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근사한 신혼집을 위해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일이 참 재미있었다. 칼럼을 핑계 삼아 에디터의 기호대로 고른 아이템을 미리 매치시켜보고 나름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완성한 위시리스트가 있었기에 가구 쇼핑이 뭐가 어려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위시리스트에는 지금 당장 살 수 없는 비싼 물건이 대다수를 차지했기에 리스트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문제는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현실로 닥치면서 ‘한정적인 예산’이라는 고전적이고도 피해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자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 큰돈을 써야 하는 걸까?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소파? 근사한 브런치를 위한 아름다운 다이닝 테이블? 집에 무드를 더해줄 디자인 조명? 무엇 하나 뺄 수 없는 ‘에센셜’한 아이템이었기에 집요한 성격의 에디터는 고민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에디터의 얘기를 듣자 전 <메종>의 인테리어 디렉터이자 지금은 리빙 칼럼니스트인 강정원은 테이블>조명>소파의 순서라고 조언했다. “소파는 소파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질 수 있어요. 공간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도 부피 때문에 한계가 있고, 아무리 좋은 소파를 사도 아이가 생기면 금세 낡거든요. 신혼 때 샀던 가구 중 먼저 바꾸게 되는 아이템이니 지속적으로 사용할 가구를 좋은 브랜드로 고르는 게 낫죠. 제 경우엔 신혼 때 집들이다 뭐다 해서 손님 초대가 잦은데 그때마다 교자상을 펴고 흰 종이를 까는 게 싫어서 커다란 테이블을 사고 그 당시엔 소파 없이 생활했어요.” 금세 낡게 되는 것에는 힘을 빼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나 조명에 힘을 실으란 얘기. 디자인 아이템을 고르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신중한 코발트숍의 유미혜 대표 역시 테이블>조명>소파의 순서에 힘을 실었다. 일찌감치 2세를 계획하고 있는 신혼부부라면 소파에 비해 비교적 덜 낡고 관리가 용이한 테이블과 좋은 의자에, 잦은 이사가 예상된다면 조명에 투자하기를 추천했다. 그녀도 아이들이 볼펜과 크레파스로 낙서하지 않는 나이가 될 때까지 지금 쓰는 소파를 천갈이해서 사용할 계획이다. 수입 가구 편집숍 밀라노디자인빌리지의 박소현 실장 역시 그 용도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테이블에 우선 순위를 줬다. 단순히 밥 먹는 식탁이 아니라 책 읽고, 커피와 차를 즐기며, 홈 오피스로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테이블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은 생각이 다르다. 그녀가 중시하는 순서는 소파>테이블>조명이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TV를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소파가 불편하니 바꾸고픈 생각이 절실하더라는 것. “좋은 테이블이 없다고 밥을 못 먹는 건 아니잖아요. 조명은 을지로에서 노출 전구만 잘 골라도 그만이에요. 밥 먹을 때조차 TV 앞에서 깔깔댈 정도로 TV에 목숨을 거는 우리 부부는 이사할 때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소파를 두고 왔을 정도였어요.” 최근 쇼룸을 오픈하며 인테리어 컨설팅을 시작한 짐블랑의 김미희 실장은 조명의 힘을 강조했다. 패브릭 소파를 사면 천을 갈아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다이닝 테이블은 테이블클로스와 커트러리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데 조명의 경우는 다르더라는 것. “붙박이 조명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 해도 플로어 조명을 사는 정도에 그치죠. 저도 신혼 때는 몰랐는데 살다 보니 특히 식탁 위의 펜던트 조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그녀는 구비의 세미(Semi) 펜던트를 사는 것이 목표다. 조명 다음으로는 온 가족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소파가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조명>소파>테이블 순서. 얼마 전에 결혼한 <메종>의 김미진 편집장도 조명 예찬론자다. 정확하게는 조명을 포함한 디자인 소가구가 첫 번째고 그 다음이 테이블, 마지막이 소파라고. “사실 혼자 살 때나 둘,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늘어났을 때의 가구 규모는 확연히 다르답니다.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취향 역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제 경우엔 에로 사리넨의 튤립 테이블을 고집 부려 구입했지만 벌써 식탁보다는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겠다 고민 중이에요. 반면 거실 한쪽에 놓은 PH 80조명은 200% 만족입니다. 조명은 소파나 테이블에 비해 가격은 덜 부담스러운 반면 처치 곤란의 확률은 확연히 줄어들고 공간에서 발휘하는 효력은 대단하죠.” 한정된 예산 안에서라면 집의 다양한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보며 변화를 줄 수 있는 아이코닉한 조명에 투자하도록 하고, 후에 집의 규모나 취향에 확신이 들었을 때 보다 덩치 큰 가구에 투자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길이라는 것.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모든 얘기를 간추려보니 역시 소파도, 테이블도, 조명도 중요한 게 맞았다. 모두의 우선 순위는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라이프스타일이 변수라고 말했다. 집의 구조와 성격, 앞으로 내 집을 소유하기까지 어느 정도 이사를 다니게 될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예측, 그리고 미래에 즐기고자 하는 삶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패턴인지 분석하면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다. 이 칼럼을 쓰기 전 에디터의 마음은 마음에 쏙 드는 테이블을 발견해 어떻게든 그것을 가질 욕심에 테이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물론 그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확고하게 테이블에 큰돈을 써야 할 타당한 이유를 찾았다.

에디터 정수윤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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