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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May

통하는 비타민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5-14, 09:57:02 조회 수: 12828

장르를 넘나드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힘을 제대로 수혈 받은 디자이너 듀오 비타민 디자인.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란 주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아티스트의 금자탑이 뮤지엄에 자신의 작품을 남기는 것이라면 디자이너의 금자탑은 스테디셀러를 남기는 것이란 말이 있다. 어떤 디자인이 스테디셀러가 되려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공간 디자인, 제품 디자인, 컨셉트 디자인 등 장르를 넘나드는 디자인 작업으로 대중과 소통해온 비타민 디자인은 도무스 아카데미 출신의 듀오 디자이너 그룹이다. 소통하는 디자인에서 소통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탈리아를 찾은 두 디자이너는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을 독일에서 보낸 이웅기 대표의 밀라노 생활은 미술을 하시던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간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었다. 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해 찾은 밀라노였지만 순수미술이 그의 출발점이 됐다. 순수미술은 타의에 의한 선택이었지만 그가 지금까지 디자인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가 이론 못지않은 감성을 겸비한 것도 그의 출발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본래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밀라노를 찾았던 김태영 실장은 유학 중 좋아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선택했다. 그 다음이 도무스 아카데미였다. 각기 다른 출발점에 섰던 그들은 결국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 연을 맺었다. 카시오, G-Shock, 밀라노 지하철, 삼성 등과 협업하는 과제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됐지만 졸업 후 둘은 헤어졌다. 밀라노에 남은 이웅기 대표는 지오반니 레반티, 미키 아스토리의 스튜디오에서 디자인 작업을 이어갔다.

김태영 실장 역시 한국에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디자인에 매진했다. 그들이 비타민 디자인으로 뭉친 건 2004년. 너무 다른 캐릭터 탓에 서로를 도와가며 비타민 디자인을 꾸려온 지 이제 8년이 됐다. 지금은 갤러리, 호텔 레스토랑, 오피스, 건물 외관 디자인, 팝업 스토어 등 공간 작업을 비롯해 화장품 케이스, 리모트컨트롤 등 산업디자인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 이력을 갖게 됐지만 초기에는 너무 세분화된 한국 디자인 시장에 도저히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디자이너’란 말을 최초로 대중에게 각인시킨 1세대 디자이너 엔조 마리, 디자인의 네오모던 장르를 개척한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 비코 마지스트레티, 피카소가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한 아티스트 브루노 무나리까지. 우리가 이들을 특정 분야의 디자이너로 국한 지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폭넓은 디자인 영역 때문이다. 아트 디렉터를 육성하는 디자인 교육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가구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로 세분화된 한국 시장은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이너들이 이탈리아로 많이 가는 이유는 디자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에요.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곧 전 세계가 마켓이 되거든요. 수많은 디자인 브랜드가 존재하는 기회의 땅이고 인하우스에 디자인을 맡기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디자인 아웃소싱이 일반적이기도 하고요.” 그들의 디자인 베이스가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라는 사실이 비타민 디자인을 평가하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얕은 식견과 속임수로 착취에 가까운 소비를 강요하는 나쁜 디자인은 도태되어야 하고 정직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디자인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큰 울림으로 남았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디자이너란 직업에 대한 존중과 확실한 긍정을 품은 디자이너에게 신뢰가 가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의 공간을 가꾸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고 두 번째는 이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디자인이 주는 감성을 느끼고 가게 할 의도였습니다.” 디자인은 물질적인 오브제뿐 아니라 생각, 행동 패턴까지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비타민 디자인이 장르를 구분 짓지 않는 이유도 그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 확고한 디자인 마인드는 비타민 디자인이 롱런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다.


1 지난해 봄 비타민 디자인은 숨통이 트이는 작은 야외 테라스에 반해 이 사무실을 선택했다. 화이트 에폭시로 말끔하게 마감한 비타민 디자인의 1층 라운지 공간에는 이왈종 화백의 조형 작품, 이탈리아 아티스트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여체 사진 작품, 카를로 바르톨리의 유기적인 소파가 놓여 있다. 사무실보다 아틀리에라고 부르고픈 이 공간은 청담동의 빽빽한 빌딩숲 안이다.
2 비타민 디자인의 이웅기 대표와 김태영 실장 뒤로 오피스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이사를 오면서 천장이 높았던 옥탑 공간을 2개의 층으로 나누고 아래층은 라운지로, 위층은 오피스로 쓰고 있다. 2층은 계획적으로 구성했고 1층은 물건과 작품을 활용해 즉흥적으로 꾸몄다.


1,2,3 컬렉터의 수납장 같은 이웅기 대표의 공간에는 조각가가 만든 라디오, 이진용 작가의 기억에 관한 오브제, 지오반니 레반티와 디자인한 트레이, 알베르토 메다의 조명, 리차드 사퍼의 테이블 램프, 이국적인 전통 장식품 들로 채워져 있다. 어느 물건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다.
4 자동차 디자이너로도 일했던 김태영 실장의 수집품인 오로지 빨간색인 자동차 모형.
5,6 경사진 창이 남다른 분위기를 내는 2층 오피스. 창마다 크기에 맞는 빈티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오른쪽 선반 위로 비타민 디자인의 산업 제품 디자인 리스트도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가 김태영 실장의 공간. 오른쪽 유리 파티션 뒤가 이웅기 대표의 공간이다.


1 이웅기 대표의 컬렉션 중 하나인 부엉이. 금속판으로 만든 독보적인 아우라의 부엉이는 칠레에서 구한 것이라고.
2 작곡가인 아내의 작업실. 클래식 피아노 위로 네거티브 사진과 포지티브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3 이웅기 대표의 집 거실. 작곡가인 아내와 두 살배기 아들이 함께한다. 이웅기 대표 뒤로 멤피스의 걸작, 에토레 소트사스 디자인의 플로어 스탠드가 보인다. 공사는 최소화했고 자신의 컬렉션과 취향만을 소스로 스타일링했다.
4 임스의 라운지 체어와 로버트 인디애나의 판화가 조화를 이루는 거실. 이웅기 대표의 모든 공간에는 디자인과 아트가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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