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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Jun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아트와 일상 사이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6-04, 12:11:53 조회 수: 10402

폭넓은 아트 컬렉션으로 채워진 집, 전통과 현대를 시적으로 직조한 한복, 일상에 투영된 예술적 기질이 남다른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평창동 집

3년 전 평창동에 삶을 시작한 디자이너 김영석은 이사를 다닐 때마다 매체들의 촬영 요청이 쇄도하는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다. 덕분에 여러 매체를 통해 그 집의 건축을 봤고 마당을 봤으며 폭넓은 컬렉션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집을 찾을 수 있는 구실이 생겼다. 얼마 전 그의 기획으로 오픈한 세계적인 미디어 설치 작가 다츠오 미야지마의 전시 <다츠오 미야지마… 그리고 한옥>이 이유였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다츠오 미야지마의 작품에 매료 돼 그의 스튜디오가 있는 나오시마를 찾아간 디자이너 김영석. 그에게 동양의 사상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이번 전시를 제한했고 결국 성사됐다. 6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 디자이너 김영석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가회동 한씨 가옥에서 자신의 한복을 입고 설치미술을 감상하는 색다른 구상을 기획했다. “반복된 숫자를 통해 삶과 죽음, 시간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작업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시를 오픈하고 나서는 저 역시 매일 전시장에 나가 관람객의 반응을 살피죠.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예술을 수집하는 컬렉터에서 예술을 전시하는 기획자가 된 디자이너 김영석.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마도 이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1 앤티크 부처상, 아르네 야콥슨의 디자인 체어, 아티스트 설치작업이 공존하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거실. 이왕이면 디자이너 가구를 사용하려는 의지는 좋은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연결된다. 2 북악산을 배경으로 앉은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3 디자인과 아트,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지하 작업실. 왼쪽으론 게스트룸을 겸하는 침실이, 오른쪽으로는 바깥 정원과 연결되는 지하 연회장이 자리한다. 4 대리석이 깔린 지하 침실은 여름에 냉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이미 봐온 터라 그의 집이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매체에서 각색한 몇 장의 사진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힘있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은 아트 컬렉션, 빈티지 디자인 가구 컬렉션, 동양의 앤티크 가구들이 경계를 두지 않고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너무 많은 스타일이 혼재해 있으면서도 조화로운 집. 이처럼 다양한 취향과 스타일을 한 공간에 유연하게 풀어내는 그의 재주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1 앤티크장, 도자기, 회화와 사진, 조형물. 각기 다른 시대와 작가로 부터 출발한 물건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지하 작업실. 2 서양화가 이우환,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걸려 있는 2층 복도 공간.


1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가구와 동양적인 수납장, 앤티크 소반이 어우러진 공간은 2층 거실이다. 2 어머니를 우히나 게스트룸 한 켠의 평화로운 자리.


“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였나. 집에 연못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당을 판 일이 있었어요. 별난 아이였죠. 비가 오고 물웅덩이가 됐지만 물은 곧 땅으로 스며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 쭉 사대문 안에 살았는데 고궁은 제가 즐겨 가는 나들이 코스였어요. 당시 고궁 안에는 꼭 갤러리가 있었죠. 미술품이나 앤티크에 대한 애정은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은 어릴 때 구입했던 불상. 어린 마음에 기분이 좋아서 늘 머리맡에 두고 잤었는데 지금 보면 싸구려 오브제에 불과한 물건이다. 하지만 컬렉터 김영석의 출발점이었던 소중한 물건임엔 틀림없다. “그냥 좋아서 사는 작품도 있고 그저 아름다워서 사는 작품도 있어요. 모든 물건은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예술과 우리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그가 12년 동안 한복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였다. 고운 선은 전통을 따르되 컬러와 컬러 매치는 모던함을 잃지 않는 그의 한복은 정갈하고 시적인 멋을 지닌다. 불편함이나 복잡한 형식을 감수해야 그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한복이지만 ‘형질’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게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신념이다. “시대는 풍미하고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서도 어떤 획이 있었고요. 언젠가는 한복을 내려놓고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옆집이 없어서 이 집(북악산을 배경에 둔 그의 집 주변엔 작은 절 몇 채만 있을 뿐이다)을 선택했고 낯선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지만 한복 디자이너 다음의 인생은 여러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복지 시설을 만드는 것이라는 조심스런 포부를 밝혔다. 그를 구심점 삼아 연주가, 가수, 플로리스트,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그 중심에서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고민하는 주체도 디자이너 김영석이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과 전통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품은 디자이너. 그의 집을 취재하고 나오면서 ‘모든 것이 저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다’ 는 공자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1 지하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해리 베르토이아의 다이아몬드 체어 주변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이 걸려있다. 여전히 컬렉션하고 싶은 작가에 대해 묻자 그는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을 거론했다. 2 팝아트의 새로운 아이콘인 줄리안 오피의 작품과 중국 앤티크 가구, 유러피언 테이블이 대비를 이루는 연회장. 연회장은 외부 정원으로 통해 열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1,2 울타리를 치고 좁고 길게 만든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정갈한 정원. 오랜 컬렉션인 돌 조각상과 돌 가구가 그의 정원에서 위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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