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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May

Old & Wise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5-14, 09:58:52 조회 수: 12230

창 너머로 북한산 끝자락이 마주 보이는 홍지동 빌라. 집주인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오랜 집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도 자연을 벗 삼은 그 포근한 정서는 그대로 남았다.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은 단순한 책장이 아니라 집 안 살림살이 하나하나의 성격과 사이즈를 고려한 수납 시스템이다. 하단에는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기 쉽도록 서랍을 제작했고, 슬라이딩 도어 안쪽에는 가전제품을 수납했다. 반대쪽에 놓은 소파와 티테이블은 폭이 좁은 거실 구조를 고려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패브릭은 모두 그레이를 주조색으로 하여 톤을 바꾸거나 소재를 달리하는 식으로 집 안 전체에 통일감 있게 사용했다.


집을 선택하는 기준이 누구에게나 같을 순 없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 실장은 집값에 맞먹는 전세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차라리 오래된 주택을 사서 취향에 맞게 고쳐보라고, 그리고 진짜 자기 집에서 사는 기쁨을 오래도록 누려보라고 권한다. 출판사 바다봄을 운영하고 있는 황정혜 대표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할 새집을 찾는 중이었다. 음악이라는 공통된 문화 코드 안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 실장과 평소 절친 사이였던 그녀. 결국 친구의 권유에 따라 평창동과 부암동 사이에 위치한 홍지동의 낡은 빌라를 구입했다. 본인은 출판업에 종사, 남편은 PD로 이들 부부에겐 온갖 서적과 CD, DVD가 가득했고, 76㎡의 아담한 공간에서 그 모든 살림살이와 동거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집을 위해 김재화 실장이 제안한 솔루션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집에서 현관까지 무분별하게 확장되어 있던 주방의 영역에 가벽을 세움으로써 깔끔하게 정리할 것. 덕분에 주방 동선의 편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수납할 것이 많은 주인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가장 넓은 거실의 벽 한 면에 붙박이 책장을 짜 넣을 것. 이로써 가전 수납까지 해결됐다. 셋째, 꼭 필요한 가구만 구입하고 공간 비례에 맞춘 제작 가구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 필요하다면 기존의 가구는 과감히 포기할 것. 넷째, 집 안의 모든 패브릭은 컬러를 하나 정한 뒤 그 안에서 소재와 톤으로 베리에이션을 줄 것. 이는 방마다 다양한 패브릭을 시도할 경우 산만해지기 쉽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섯째, 천장 중심에 조명을 달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펜던트 조명을 낮게 달 것. 김재화 실장은 높지 않은 천장에 무엇이 더 적합한지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이렇듯 실제 면적에 비해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더 여유로워진 공간은 어린아이를 배려하고 집주인 내외의 문화적 취향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고 감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디자인 및 시공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070-8275-1209, www.spacelita.com)


공사 기간 3주
공사 비용 4천3백만원


집 안의 모든 문은 기존의 것을 재활용했지만 현관 앞 전실과 아이 방은 예외다. 특히 아이 방의 문은 아이 키에 맞춘 작은 문을 문 안에 하나 더 만들어 넣었다. 망입 유리를 끼워 방 안이 들여다보이니 안전하고, 스티커로 아이의 이름을 써붙일 수 있어 좋다. 아이의 방은 기존에 있던 책장을 사용해 평범하게 구성한 대신 개별 그래픽 디자인을 거친 시트 스티커를 붙여 위트를 주었다.


이 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공사는 주방 입구에 가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기존의 김치냉장고를 현관 가까이 두어 주방의 영역이 제대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 가벽은 현관으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면서 주방의 영역을 제한, 그 결과 주방 동선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전신 거울이 달린 벽이 그 가벽이다. 마주 보고 있는 공간은 전 주인이 김치냉장고를 두고 사용하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화이트 커튼을 달아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이전 집에 드레싱룸이 있었던 집주인은 드레싱룸이든 서재든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주인은 서재를 택했고, 대신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침실에 가벽을 세워 그 안쪽에 드레싱룸의 기능을 부여했다. 드레싱룸의 폭은 길게 배치된 행어 옆으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 그렇게 세워진 가벽은 방 사이즈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간이 화장대, 디스플레이 선반, 무드 있는 매입 조명의 기능까지 수용하고 있다.


1 아이를 위한 요소들 이 집에는 어린 아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 아이의 장난감치고는 부피가 큰 키즈 주방 싱크대를 거실 책장 안에 과감하게 빌트인시켜 장난감에 어엿한 제자리를 찾게 하는가 하면, 아이 방 문에는 특별히 아이용 문을 하나 더 만들어 넣었다. 집주인이 책에서 보고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을 실현한 결과다.
2 스티커를 활용한 월 데코 회색 컬러를 주로 사용해 아이에게는 자칫 삭막할 수 있을 법한 공간이지만, 이 집에서 가족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시트 스티커를 이용한 적절한 월 데코의 활용에 있다. 아이의 키를 재기 위한 측정 스티커, 아이 방 조명과 오버랩되는 조명 기구 패턴 등을 활용했다.
3 도어 데커레이션 주인의 취향, 스토리가 담긴 집을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시트 커팅을 이용해 주인이 좋아하는 문구를 현관 앞 전실 문에 붙여 넣었다. 문구는 주인이 좋아하는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다. 집 안의 도어는 거의 모두 재사용되었고, 전실과 아이 방 문만 개방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망입 유리를 끼워 넣어 새로 제작했다.
4 제작 가구 활용 집이 넓지 않은 경우, 제작 가구의 활용은 더 빛을 발한다. 공간의 비례에 맞는 가구를 짜 넣었을 때 공간을 물리적으로 더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 이 집에서는 부엌 선반을 비롯해 폭이 좁은 거실 구조를 고려해 소파를 제작했고, 티테이블 역시 기성품을 사용하면 그 비례가 맞지 않아 좁고 길게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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