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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Jun

Bravo my Audio, my Life

작성자: 전예진주임 등록일: 2012-06-26, 09:15:05 조회 수: 13600

오디오 애호가라는 두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깊은 지식과 철학을 지닌 이코복스 커피(Ikovox Coffee, 구 커피키친)의 이우석 사장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사로잡았던 오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의 오디오 역사는 그의 삶을 함축하고 있고 그의 집은 오롯이 음악을 듣기 위해 세팅된 공간이었다. 이우석 사장은 오디오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나의 오디오 역사는 어린 중학생에게는 꽤 비쌌던 LP판의 카피본을 구하러 청계천 8가 중앙시장을 쏘다니던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통에서 아는 형을 만나 그의 집에 따라갔던 날 경험한 일생일대의 사건이 나를 오디오 세계에 입문시켰고 지금까지 좋은 소리를 찾아 여행하게 만들었다. 그의 집에 놓여 있던 JBL4345는 문짝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사람을 압도하는 대형 스피커였다. 엄청난 덩치에 흘러나오는 소리는 더욱 엄청났다. 그야말로 힘있고 진한 울림이었다. 그날 이후 JBL 오디오를 갖기 위해 꾸준히 돈을 모았고 그 당시 2백50만원 정도 하던 JBL4343을 구입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도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비싼 오디오를 산다며 반대하지도 않으셨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팻 메스니를 시작으로 재즈 음악에 빠져 있던 나에게 재즈에 어울리는 소리를 뽑아내는 JBL은 최초이자 최고의 오디오였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의 세월 동안 좋은 오디오를 찾아 떠난 여정은 꽤 길었고, 많은 명기들이 나를 스쳐갔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꿈의 오디오라 일컫는 하이엔드 오디오(1970~80년대 이후에 생산한 오디오를 하이엔드 급으로 분류한다)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스위스의 오디오 메이커 FM어쿠스틱스는 스팅이 사용하는 오디오로도 유명한데 주로 현역 뮤지션과 세션이 사용한다는 최고가의 하이엔드 브랜드다. 이런 오디오는 해상력이 발달해서 미약한 소리까지 선명하게 잡아낸다. 예를 들면 대편성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때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팀파니의 위치가 어디인지, 퍼스트 바이올린의 위치는 어디인지를 열띠게 논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해상력 때문이다.

거기에 하이엔드급 오디오에서는 유일하게 음악적인 뉘앙스가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오디오 메이커인 골드문트는 경제력 있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특히 선호하는 브랜드로 여러 개의 우퍼가 딸려 있으며 음압이 높아 온 방에 울려 퍼지는 위력이 대단하다. 방음 시설이 된 청음실을 마련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다양한 하이엔드 오디오를 전전하는 동안 나 역시 스테레오 사운드를 최적으로 세팅하기 위해 방의 구조를 바꾸거나 CD 플레이어, 케이블을 바꾸는 데 제법 큰돈을 썼다. 콘서트장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편성을 집에서 재현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음악보다 다른 것에 집착했고, 그러다 보니 오디오의 노예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시장에 갔다가 중고 오디오를 파는 가게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한 할아버지가 고장난 라디오에서 뜯어낸 유닛에 진공관을 연결해 음악을 듣고 계셨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스피커의 소리에 대해 몇십 년간 운운하고 좋은 소리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비로소 그날, 진짜 음악을 들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10여 년을 빈티지 오디오의 세계에서 헤맸다. 시중에 파는 빈티지 오디오는 잡음이 심하다거나 코맹맹이처럼 멍청한 소리를 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다. 물론 틀리지 않다. 1950년대 이전에 생산된 빈티지 오디오는 콘덴서 수명이 이미 다했기 때문이므로 수리가 필수다. 나는 빈티지 오디오의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에 대한 갈증과 그 해답을 극장용 오디오에서 찾았다. 모든 녹음 및 음향 기술은 영화에서 시작했는데, 미국과 독일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영화 산업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그때 미국을 주름잡던 브랜드가 알텍과 JBL, 독일의 영화 사운드를 책임져온 브랜드가 텔레풍겐, 지멘스, 자이스 이콘 등이다. 나는 몇 가지 라인을 들어보곤 자이스 이콘으로 마음을 굳히고 수소문 끝에 스피커 유닛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은 외국에서 구했다. 지금 쓰는 스피커 모델명이 이코복스(Ikovox)로 내가 운영하는 커피 숍 이코복스 커피(구 커피키친)의 이름도 이 스피커의 이름을 땄다. 1940년대 오디오 도면을 구해 고장났을 경우 회로를 어떻게 수리해야 할지도 대비해두었다. 당분간 이 오디오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리에 매료되고 오디오 기기에 탐닉한 세월 동안 나는 오디오에서 인생을 배웠다. 앰프를 열어보면 전선과 회로, 도체의 구성이 마치 도시 계획을 축소해놓은 듯 보인다. 오디오는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인테리어에서 배관 공사나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집에서 차를 마시며 말러의 교향곡을 듣노라면 마치 한 권의 책을 정독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처럼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을 때처럼 음간의 미세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명징하고 완벽한 스테레오 사운드를 찾는 욕심을 버리고 나는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과 음악을 얻었다. 오랜 시간을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그 여정이 나쁘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은 지금,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좋다. 내 인생에서 오디오와 음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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